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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독립이야기 - 3. 관악구에서 보증금 500들고 발품팔기

by 또떠나 leavAgain 2023. 9.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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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초부터 7월 말까지 두 달간 하루도 쉬지않고 발품을 팔았다
내가 조금 더 정보력이 많았거나 결단력이 있었다면 일주일만에도 집을 구했을 것이다
그만큼 관악구에는 집이 많았고,
내가 제시한 보증금 500이 관악구에서는 적은 돈이 아닌 듯 했다
관악구 집주인들이 선호하는 월세 보증금은 1000만원 인 것 같더라만(2023 기준)
월세를 조금 올린다면 보증금 500으로 조정해주겠다는 곳은 많았다
심지어, 내가 부른 500보다 더 낮게 200~300에 해줄테니 당장 다음주에 입주가 가능한지 물어보는 집주인들도 있었다

평일 오전8시~오후6시는 근무 시간이었고
올해 초부터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가 8월말 마감이었기 때문에
솔직하게 말하면 발품은 커녕 직방, 피터팬 앱으로 부동산에 연락해 볼 시간도 부족했다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마음에 드는 집들을 찜 해놓고 중간에 화장실에 가서 한번에 연락을 돌렸다
하루에 두 곳에서 많게는 여섯 군데까지 전화를 돌렸다

나 - '사장님~ 저 직방(or피터팬)으로 매물번호### 보고 연락드려요! 아직 방 있나요?'
사장님 - '그럼요~ 보러오세요 언제 시간되세요?'

그렇게, 마음에드는 집이 있는 부동산에 전화를 모두 돌려버린 결과
순식간에 2주간 퇴근 후에 부동산에 가야하는 스케줄이 짜여졌다
6시 칼퇴를 하고서는 판교역부터 관악구의 신림역, 봉천역, 서울대입구역, 사당역 곳곳의 부동산에 방문했다

나의 독립이야기 2편에서 등장했던 그런 중개사를 기대했던 나의 바램과 달리
두 달간 방문했던 부동산들은 그저 평범했다
알다싶이 6~7월은 무진장 더운 계절이고 이 날씨에 차도없이 퇴근 후 걸어서 발품을 팔겠다는건
미친 생각이었던 것 같다..

어떤 날은 너무 더워서 땀이 비오듯이 내리는 바람에 중개사님께 양해를 구하고
중간에 옷가게에 들러서 옷을 갈아입고 부동산에 간 적도 있었고
퇴근 후 밤늦게 상담을 끝내고 나오면 신림역 한복판에서 호달달 떨면서
과연 내가 이 유흥의 거리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열심히 집 구해서 하루만에 운명을 다하는 건 아닐까 하는 고민도 했었다

너무 많은 부동산을 방문해서 의식의 흐름대로 적었다간
중구난방이 될 것 같아서 에피소드 형태로 정리해보았다

episode1. 여기까지 왔건만 집으로 돌아가라는 잼민이
부동산을 방문하면 두 곳으로 나뉜다.
나이가 좀 있는 분들 소수로 운영되는 중개소/내 또래의 어린 사람들이 가득 모여서 운영하는 중개소
이 곳은 후자였다.
방문해보니 중개소 주변으로 고등학생인지 대학생인지 모를 어려보이는 남자들이
중개소에 방어벽을 세우듯 나란히 쭈구려 앉아서 줄 담배를 피고있었고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가니 그 중에서도 가장 어려보이는 잼민이가
나에게 서류를 내밀었다
잼민이 - '여기에.. 이름이랑.. 음 보증금 얼마있으신지 적으세요'
내가 적어놓은 보증금500/월세50 기준이 하찮았는지 바로 인상을 찌푸리는 잼민이는
요즘 이 가격으로 집 못 찾는다고 나에게 훈수를 두기 시작했다

잼민이 - '보증금 500으로는 집 못구해요, 1000은 들고 오셔야지. 대출안되요?'
안 그래도 프로젝트 마감에 여기까지 오는것만으로도 지친 나에게 훈수를 두자 나는 슬슬 열이올랐고
나 - '다른 부동산에서 200으로 부족하다고 500으로 올려오래서 돈 모아왔더니
이제 1000 만들어오라고 하시네요. 이러다 내년에 이사하겠어요'

나는 그러면 금액에 맞는 집이 없으면, 직방에서 봤던 그 집이라도 보여달라고 얘기했다
잼민이는 사실 그 집은 없다고 얘기했고(허위매물 고백?)
지금 있는건 보증금1000으로 그것도 신림역 술집 앞에 있는 원룸밖에 없으니
돈 모아서 다시 찾아오시라고 말했다

개소리;
잼민이 중개사 제외하고 다 500으로 집 소개해줬다. 그것도 같은 주에.
부동산끼리는 플랫폼만 다르지 동일한 전산망으로 같은 매물들을 실시간으로 보고있기때문에
1번 부동산, 2번 부동산, 3번 부동산 같은구에 속해있다면 사실 관악구 어느 부동산을 가도 같은 매물이 전산망에 뜬다.
보통 금액을 이렇게 먼저 제시하는 부동산의 경우는,
중개수수료를 이미 제시받고 먼저 팔아달라는 집주인이 있는 경우다
아마 내가 1000만원이 있었으면, 중개수수료를 크게부른 그 집주인의 집을 나에게 소개해줬을 것이고
가장 상태 안좋은 집들을 보여주면서 비교적 좋아보이는 1000만원짜리 비싼 집을 계약하게 만드는 그런 방식이다

이런식으로 퇴근 후 시간맞춰 달려가서 허탕치고 오기도 일쑤였다

그래서 발품팔기의 가장 좋은방법은
1. 연차사용 후 하루 딱 정해서 부동산 3군데 돌아보기
2. 주말 이용해서 부동산 돌아보기
이렇게 쉬는날을 이용해야한다.

episode2. 신림역 부동산은 걸러야 할까
오늘도 부동산에 도착했다.
여기는 30대 중반정도 되보이는 남자 세분이 운영하는 중개소였다.
피터팬에서 보고온 매물을 보여달라고 하니, 거기보다 더 좋은 매물이 있다며 그곳을 보러가자고
다짜고짜 바로 차량으로 안내했다.
보통은 중개소에 도착하면 원하는 기준의 보증금, 월세, 방크기, 애완동물여부 이런것들을 서류에 작성하고
전산망으로 그 기준에맞는 매물들을 검색해서 그 중 3~5군데를 인쇄하고
인쇄한 서류를 들고 차량으로 이동하면서 매물을 확인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바로 차량으로? 너~~~~~무 이상했다
피곤했던 나는 그래 알아서해라 하는 심정으로 차량에 탑승했고
중개사 - '어우 더우시죠~ 에어컨 좀 틀어드릴께요!'
그렇게 시원해진 차량 안에서 소매를 걷어올린 중개사의 팔에는 드래곤이 가득했다
조용히 있어야겠다 생각했던 나는 중개사가 안내하는 매물의 집을 보러갔고
매물을 보러 들어가는 와중에도 112를 쳐놓고 휴대폰을 두 손에 꼭 쥐고있었다

겁 먹은것과 달리 진짜 보여준 집은 정말 신축의 오피스텔이었고
관악구에서 집 보러다닌 곳 중에 정말 가장 좋아보였다
보증금은 역시나 1000이었지만, 월세가 50이었고
이 당시가 7월 말이었기 때문에 보증금 1000도 가능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집 구하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월급이 모여 보증금 1000까지 모아버렸다;)
굉장히 솔깃한 매물이었다
다만 조금 걸렸던 부분은, 신축에 건물도 호텔스러운? 오피스텔이었는데
내가 생각해보겠다고 하며 인사하고 돌아서자
나를 신림역까지 데려다주면서까지 계속 설득시키던 중개사의 태도였다
안녕히계세요. 하고 인사를 재차하는데도 안녕히계시지않고 계속 쫓아왔다.

나 - '생각해보고. 내일 연락 드릴께요'
중개사 - '정말.. 정말 연락주셔야해요. 여기 정말 괜찮아요. 다른 곳은 볼것도 없어요.. 정말요'

그럴수록 정말 괜찮은지 의심이 됐고, 결국 보증금 1000정도인지는 의심스러워 패스했다

episode3. 중개사님 얼굴에 홀릴뻔 했잖아요
글을 적으면서 느끼는건데, 신림역에 젊은 남자들이 중개하는 부동산이 많았던것같다
이번에도 어느 중개소에 방문했고 에피소드1번에서 처럼 연초결계는 없었지만
어디서 한 따까리 했을것같은 남자들이 그득한 부동산 사무실에 들어왔다
중개인이 많은 만큼, 손님도 정말 많은곳이었는데
외국인 여성부터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아저씨 가족단위까지
정말 다양한 손님들이 가득한 부동산이었고, 그만큼 사무실 크기도 꽤 컷던 기억이난다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니 옆에 앉은 잘생긴중개사1이 말했다
잘중1 - '곧 팀장님 오시면 안내드릴께요^^ 차 한 잔 드시겠어요?'
나 - '아뇨. 목이 안 말라요'
뭔가 잘생긴 중개사가 많은 부동산이었는데 다들 정장까지 빼입고 있어서
정신이 혼미했다. 목이 말랐는데 떨려서 거절했다
그렇게 팀장이라는 담당 중개사님이 들어왔고 굉장히 어려보여서
뭐야.. 또 잼민이인가 하고 안 좋은 기억이 떠오르려고 했지만
알고보니 30대 중반인 베테랑 중개사였다

왜 베테랑이냐. 이건 이 사람과 매물을 보러다니면서 알게됐다.
남녀노소 예쁘고 멋진걸 좋아하는건 나이들어서도 다를바 없는것같다
분명 내가 다른 부동산에서 상담받을때만해도 중개사님들이 집주인에게 보증금을 조정해달라고하면
10에 7의 집주인들은 호통을 치며 거절했었는데
프로듀스101의 손동표를 닮았던 그 중개사님이 보증금 조정을 요구하자
아주머니 집주인분들.. 10에 10이 다 흔쾌히 OK를 외치셨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옆에서 통화내용을 듣는데 아.. 역시 세상은 잘생기고 예뻐서 나쁠건 없구나 다시 한 번 느끼게 된 계기였다
보증금을 기가막히게 깎아주셔서 보여준 매물 5곳 모두 처음에는 1000만원이 었는데
300가지 깎아주셨고.. 월세도 그닥 오르지 않았다. 보증금300/월세50 수준으로 맞출 수 있었다

다만 모든집이 집주인분이 위층에 사시거나 옆 건물에 사는 조건이었어서
자꾸 나를 보고 '어머~ 아가씨 참 참하게 생겼네!!! 우리 아들이 아직 미혼인데!!!!'를 시전하셔서 입주하지 않았다.
분명 입주하게 되면 매일 왔다갔다하면서 인사도 드려야하고
힉힉호무리가 꿈인 나에게는 맞지 않을 것 같았다..
나도 참 까다로운 고객인 것 같기는 하다

episode4. 봉천에서 사당까지
사실 가장 가고싶은 지역은 봉천역에서 사당역이었다
신림역에서 한 정거장 차이인데도 조용하고 안전한 느낌이 더 강했고
특히 봉천, 사당은 유흥가가 확실히 적어서 밤늦게 귀가해도 안전하게 지낼 수 있을것같은 느낌이었다
특히 이번에 일이 있었던 봉천역 건너편의 야산(성폭행 사건이 있었다)쪽이
내가 맨처음 가계약을 했던 반지하방 위치인데
건너편의 봉천역쪽은 평지가 대부분이고 밝은 카페들도 꽤 있어서 그 쪽으로 발품을 많이 팔았다
서울대입구, 사당쪽은 가격대가 좀 높아지는 느낌인데
봉천역은 안전하면서도 가격대가 신림이랑 비슷해서 나의 니즈에 많는 방들이 많이 있었다

다만 이쪽은 부동산 약속잡기가 정말 힘들었다.
직방으로 매물 확인하고 이틀뒤로 발품예약 잡아놓으면 꼭 당일오전쯤 연락이온다
중개사 - '아이구.. 고객님 보신다는 매물이 방금 계약이 되버려서요'
정말 괜찮은 집들이 많았는데 참 아쉽다
아마 지금 계약한 집 만기가 다 되면 다시 이 라인으로 알아보지 않을까 싶다


이런식으로 두 달간 돌아본 관악구!
신림역, 봉천역, 서울대입구, 사당역은 느낌이 다 다른데
추천하는 동네 순서를 매겨보면 아래와 같다
사당 - 봉천 - 서울대입구 - 신림

사당 - 가장 안전하고 주택가와 가깝다. 그러면서도 필요한 마트나 작은병원은 다 있어서 여자 혼자 살기 좋은 지역같았ㄷ
봉천 - 신림, 서울대입구에 비해 정말 조용하다. 밤에는 술집들과 시장이 활성화되면서 조금 어두워지긴 하는데
시장 건너편의 밝은쪽으로 가면 달동네 정도의 느낌이라 정말 안전해보였다. 특히 낮시간에는 그렇게 평화로울 수가 없다
서울대입구 - 아싸리 나는 놀 것 많은 젊은이들의 거리에 살거야 하면 여기로가도 좋다. 내가 느끼기엔 부산 서면과 비슷하다고 느꼈는데
오히려 술집이나 식당이 가득한 번화가이다보니 어둡지는 않아서 귀갓길이 위험해 보이지는 않았다
사람 좋아하고 시끄러운거 좋아하면 서울대입구도 살 만 해 보였다
신림 - 여기는.. 솔직히 사건사고 너무 많다.. 발품팔때 지하철역 내릴때마다 무서웠다. 역세권 매물을 봐도 무조건 그 모텔골목으로 들어가야하는데
같은 유흥가여도 서울대입구와 신림은 다르다. 서울대입구가 홍대라면 신림은 부천이다. 뭔가 더 쎄고 무섭다
여기서 오래살기에는 여자혼자서는 무리일 것 같다고 생각했다.


내가 마지막으로 봤던 집이 episode2 보증금 1000짜리 오피스텔이었다
신림역 모텔거리쪽은 아니지만 역시나 골목길 사이에 위치한 곳이었는데
오피스텔이라는 점, 신축이라는 점에 고민을 많이하고 있었다

그래서 두 달이나 고민해봤을때 점점 눈 만 높아지고 이제는 결정해야 될 것 같아서
최근에 집을 구했다는 이전 직장의 친한 여동생을 만났다
서울대입구역에서 만나서 동생에게 조언을 얻은 결과
두 달이나 고민했는데 마땅한 집이 없으면 다른 동네도 한 번 찾아보는게 어떻겠냐는 의견을 들었다

사실 판교 직장인들은 알겠지만
성남시 판교쪽에 집을 구하지 않는한 어딜가나 멀기는 매한가지다
판교에서 관악구나, 살고있던 본가(하남 미사)나 출퇴근 시간은 비슷했다
그렇다면 관악구는 잠시 보류하고,
익숙하고 편한 미사역쪽 오피스텔을 한 번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오피스텔, 신축, 1시간 이내의 출퇴근 거리라면
지금 살고있는 본가쪽이 오히려 조건에 맞았다
미사역이라면 안전하다는게 너무 보장되는게, 본가와도 가깝고
오피스텔만 있다. 원룸이 없음이다.. 신도시이기 때문에 다 신축이고
애완동물이 모두 가능하기에 울 냥이도 데리고 나가기 적합했다

그렇게 동생에게 미사역으로 한 번 발품 팔아볼께! 그래도 아마 관악구로 가게 될 것 같긴 해
라고 말한지 바로 하루만에 우리는 바로 전 날 우리가 하하호호 웃으며 얘기했던 거리 바로 옆동네인 신림역에서 큰 일이 난 것을 알게됐다
https://www.donga.com/news/Society/article/all/20230721/120350507/1

 

대낮 신림역 인근서 칼부림…1명 사망, 3명 부상

서울 신림역 인근에서 칼부림 사건이 발생해 1명이 사망하고 3명이 다쳤다. 경찰은 이번 사건을 일면식도 없는 사람을 범행 대상으로 삼은 묻지마 살인으로 보고 있다.21일 경찰 등…

www.donga.com


동생도 현재는 영등포쪽에 집을 구했지만
서울대입구쪽으로 집을 알아보고 있었고, 나도 바로 전전날만해도 신림역 사거리를
매일 가다싶이 약 두 달간 활보하고 다녔으니
갑자기 온 몸에 소름이 끼쳤다

그냥 우연이겠지만 이 쪽에 집을 구하면 안 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고
그렇게 바로 다음주 미사역으로 마지막 발품을 팔 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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