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살 겨울 졸업 후 개발자로 첫 취업을 이룬 나는 그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다.
학창시절 때부터 인정욕구가 꽤 있었던 나는
일을 시작하고 부터 숨겨왔던 본능이 깨어나듯
평일, 주말 할 것 없이 온종일 일만 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퇴근 시간이 한참 지난 시간까지 업무를 복기하고
주말이면 아침일찍 일어나 노트북을 챙겨들고 스타벅스에 앉아서
밤 늦은 시간까지 평일에 못마친 업무를 마무리 했다
그렇게 열심히 흔히 말하는 3개월 수습기간을 마친 나는
첫 회식자리에서 나의 팀장이라는 사람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
비전공인거 티 내?
퇴근하고 집에도 안가고 왜 그렇게 오바를 해. 누구 보라고 하는거야?
3개월 수습을 마친 동기들과 함께 프로젝트 시연을 하고 갖는 첫 회식자리였기에
칭찬은 고사하고, 앞으로 더 열심히 해보라는 격려라도 들을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는데
그 날 집에가면서 나는 3개월 간의 노력을 부정당하는 기분이었다.
그 후로 1년을 그 직장에서 일하면서 팀장은 쭉 나를 맘에 들어하지 않았고
'인성이 덜 됐어'라던지 '밝은 성격인 것 같아서 뽑았는데 말이 너무 없어. 사람들한테 말 좀 걸고다녀'라던지
이상한 말을 참 많이 들었던 것 같다..
그래도 상사의 말이기에 개선해보려 밝게 웃으며 아침 인사를 건네고 다니기도 했었다
그렇게 6개월 정도 일했을 무렵,
팀장님의 지적에도 주말 공부는 게을리 하지않았던 나는
팀장님을 제외한 다른 직장 동료들에게 업무능력을 인정받기 시작했고
사내에서 공개적으로 진행된 부서이동 이벤트에서 옆 팀 팀장님에게 먼저 제안을 받게되었다.
사람좋기로 유명하셨던 옆 팀 팀장님께서는 내가 프레젠테이션이나 문서정리하는 모습을 뒤에서 보신적이 있었는데
꼼꼼하게 업무를 잘 하는 것 같다고 우리팀에 필요한 인재라고 말씀하셨다
사실 6개월 간 칭찬한마디 듣지못하고,
결재 받으러 갈 때마다 심호흡을 여러번 하고나서야 팀장님앞에 서면
어디 지적할게 없을까 문서를 읊어보다가 문제가 없을때는 아무말없이.. 문제가 있을때는 1시간씩 꾸중을 들었던 나에게
옆 팀 팀장님의 칭찬 한마디와 부서이동 제안은 희망적으로 다가왔다.
부서이동을 제안받은 팀은 신설되는 IT팀이었고 내부회계관리 통합시스템을 구축하는 팀이었는데
실제 운영되는 공장과 연결 된 시스템의 데이터베이스에서 '돈'과 연결되는 부분이 있다.
바로 회계, 무역쪽 부서에서 사용되는 시스템이 여기에 해당되는데
개발자-현업관계자 간에 힘을합쳐 실제적으로 진짜 '돈'과 연결되는 데이터를 조작해서
개인이 이득을 취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IT회사에도 1년에 1~2회 회사로 회계감사가 들어온다
실제적으로 저런 부조리가 일어나는 경우도 있었고, 개발 실수로 실제 금액과 데이터베이스 간의 숫자가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에..
회계 감사 직전에는 개발자/현업이 몇 일씩 집에못가고 장부와 데이터베이스 간의 금액이 맞을 때까지 모든 계산식을 맞춰보는 작업을 매년 진행했었다.
이러한 금액이 맞지않는 부분을 방지하기 위해 미리 '내부회계'를 관리하는 통합시스템을 구축하고자 신설되는 부서였는데
회사의 통합시스템을 구축하신 12년 경력의 책임님 밑에서 업무를 배울 수 있는 기회였다.
회사 사람들은 다들 그 책임님이 무섭다고 말했다. 하지만 말로만 전해들었던 책임님을 직접 겪어보니
그저.. 요즘 말하는 MBTI-극T 이셨기 때문에 버그를 정확하게 짚고 내부 시스템을 설명해주시려고 하다보니까
그게 따지듯이 들려서 무섭다고 느껴졌던것 같다..
회사 전직원이 사용하고 있는 통합시스템을 홀로 개발하신 책임님은 정말 똑똑하고 따뜻하신 분이었다
처음 부서이동 제안을 해주셨던 신설팀 팀장님은, 이 책임님과 면담자리를 만들어주셨고
책임님은 한 낱 신입사원일 뿐이었던 나에게 바쁜시간을 쪼개 정말 진지한 조언들을 해주셨다
들어오면 어떤 업무들을 맡게 될 것인지, 출장이 많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닥칠 어려움들은 무엇인지,
그리고 이동하게되면 지금보다 더 많은 것을 경험할 수 있을것이라는 것도
고민끝에 나는 부서이동 신청을 하게되었고, 본래 소속되어 있던 팀에도 이 사실을 알렸다
어차피 공개적으로 진행되고 있던 부서이동 이벤트이기도 했고
상사분들도 원하는 업무가 있다면 이동하는게 맞다
어차피 부서만 달라지는 것이지 일은 다같이 하는거라고 안심시켜 주셨기에
부서이동이 앞으로의 회사 생활에 문제가 될 것이라는 걱정은 전혀 없었다
그런데,
부서이동 소식을 전해들은 팀장님은 나는 새로운 타이틀을 달아주었고
'배신자' '신입 6개월을 가르쳤더니 옆 팀으로 가버리는 파렴치' 같은 이미지가 되어있었다.
팀장은 나를 불러내 이런 말도 했었는데
'지금 사귀는 남자친구랑 오래됐다고 들었어. 여자니까 결혼할거면 출장 업무가 없는 지금 부서에 남는게 좋은 선택일거야'
그렇게 한 두달 내에 부서이동이 이루어진다는 말에 이상한 말들도 버티고 있었는데
나와 함께 부서이동 신청을하고 대기하고 있었던 같은 팀 사수가 업데이트 된 소식을 전해줬다
'회사에 감사도 들어오고, 처리해야 할 업무들이 밀려서 부서이동이 내년에나 이루어 질 수 있데요'
'네? 그러면 저희 업무는 어떻게 되는거에요?'
'아무래도 내년까지 양쪽 부서 업무를 병행해야 될꺼에요. 저도 지금 업무가 많은데 걱정이네요'
그렇다 내가 팀장님 눈칫밥을 먹을날이 늘어났다는 소식이었다.
나는 그나마 신입이었고 신규부서에서 편의를 많이 봐주셨기에
부서이동 전까지 담당하고 있던 본래 팀 업무만 처리할 수 있도록 얘기되었지만
사수분은 맡은업무 + 신규부서 업무까지 아마 몸이 남아나지 않으셨을것이다.
실력있었던 사수분은 그렇게 얼마 지나지않아 대기업 IT팀으로 이직하게 되었고
처음 입사했을때부터 이직하실때까지 내 옆에 붙어서 아무것도 모르는 나를 가르쳐주셨던 사수분이었기에
그 분의 뒷모습에 응원밖에 할 수 없었다. 사수님 고생하셨어요..
부서 이동을 얘기했던게 8월 쯤이었나..
그 해 12월 31일에 나는 결국 부서이동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퇴사했다.
월, 화, 수, 목, 금, 토, 일 하루도 일을 안했던 날이 없었던 것 같다.
부서이동은 커녕 업무는 점점 늘어났고 마지막에는 큰 계열사 업무를 혼자서 다 처리할만큼 나의 업무량은 성장해있었다.
여담이지만 현 직장에서 업무를 처리할때면,
사수분이 쉬엄쉬엄하라고 급하게 처리하지 않아도 된다고 걱정을 할 때가 많은데
아마도 전직장에서의 업무량이 버릇이되서 급하게 업무를 쳐내는 것 같다.
나를 싫어하는 상사밑에서 일하는 것은 정말 피말리는 일이다.
팀장은 출근길 엘리베이터에 나를 마주치는 날에는 티나게 인상을 찌푸렸고
간식이라도 사오는 날에는 나만빼고 다른 신입사원들에게만 나눠주었다(개인적으로 이게 가장 유치하다고 생각했고 속상했다)
업무 시간에 동기들과 커피를 마시러 나가서 얘기가 길어진 적이 있었는데
팀장이 다른 팀장님들에게 고자질했고.. 업무 시간에 커피를 30분이상 마시는 행동은 앞으로 금지한다는 전체메일을 보내
나 때문에 동기 전체가 커피를 30분 이상 마실 수 없게 된 사건도 있었다.
이후로 다시는 업무시간에 바람 쐐러 나갈 생각도 하지않게 되었다.
마음의 피는 이미 말랐고.. 밥을 아무리 먹어도 몸이 말랐다
업무때문에 3개월 만에 대학 친구들을 만나는 날 이었다
그 날도 야근끝에 '내가 너무 늦었지ㅠㅠ' 라고 말하며 뛰어오는 나를 쳐다보던 친구들의 표정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마치 공포영화라도 본 듯한 표정의 친구들은
'야.. 너 얼굴이 왜그래. 곧 죽을 것 같잖아'하며
너가 카톡으로 힘들다 힘들다해서 힘든 건 알았지만 얼굴을 보니 해골같다며
볼이 쏙 들어가서 살이 하나도 없다고 이야기했다.
그 날 친구들은 묵묵히 내 부서이동 이야기를 들으며
내 앞접시에 음식을 계속 담아주었다
그럴만도 했던게 지금 생각해보면 평일은 야근때문에 저녁을 굶기 일쑤였고
주말에는 아침 8시에 일어나 노트북을 펼치고 밤 12시까지 일을했으니
집에서 일 하는날에는 그나마 나았던게 중간중간 부모님이 챙겨주는 음식이 있어서
노트북에 시선을 고정한 채 5분만에 우적우적 삼키고 연명하며 다시 노트북에 시선을 두었다
제조업 공장에 연결된 시스템이었기에 주말에도 24시간 실시간으로 공장은 움직였고 시스템이 잘못되면 바로 개인 휴대폰과 메일로 요청이 쏟아졌기에
밥 먹는 시간은 사치였다.
그 때 나의 몸무게는 45kg이었다.
입사 전만해도 52kg 정도를 유지하던 나는 몇 년 간의 꾸준한 헬스로
장점은 건강밖에 없다고 자부하는 사람이었는데
내가봐도 해골같은 거울속의 모습을 보면서 직장인은 원래 이런거라고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아마 그렇게 조용히 내 몸은 망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그 시기 나에게는 5년간 연애를 이어가던 남자친구가 있었는데
나보다 4살 연상이었던 그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미 한 번 시험에 떨어졌던 남자친구에게
4살 어린 여자친구가 먼저 취업에 성공했다는 사실은
꽤나 마음을 조급하게 만드는 일이었던 것 같다
나는 그가 꿈을 갖지 않는것에 항상 불만이었다
나와 함께라면 그저 즐겁다는 그에게
'어느 날 내가 없어지면 그땐 오빠는 어떡하려고 그래?'하면
그런 말 하지말라며 정색하던 그 사람이 나는 정말 걱정됐다
내가 없을때도 행복한 일을 찾았으면 했고
얼마 벌지 못하더라도 하고싶은 일을 찾아야한다고 생각했다
어느날 친한 친구가 군무원으로 일하고있는데 안정적이어 보인다며
나도 도전해보고 싶다는 말을 하는 남자친구를 보며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고
공무원 시험에 떨어지게 되더라도
이 경험은 이 사람을 충분히 성장시켜줄거라고 믿고있었다
결국 그 사람은 나와 헤어질 쯤 2년만에 군무원에 합격했지만
만약 포기하고 다른 일을 준비했더라고 해도 고생했다고 토닥여줬을 것이다
우리는 단단했고 그 어떤것도 우리를 갈라놓는 일은 없을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보다 이른 내 취업은 우리 사이를 갈라놓기에 충분한 이유였다
부서이동을 얘기했던 8월쯤 부터는 매일 울면서 출근했는데
그냥 지하철에 타고있으면 도살장에 끌려가는 기분이었고
사람들이 다 쳐다보고 있는데도 눈물이 줄줄 흘렀다
그러고 회사에 다다를때면 아무렇지않게 손등으로 눈물을 닦아내고
무표정으로 출근하고.. 퇴근하면 남자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속상했던 일을 털어놓는게 일상이었다
항상 묵묵하게 들어줬던 남자친구에게 내 투정은 배부른 소리로 들렸을지도 모른다
언젠가부터 전화기 너머 남자친구의 말 수는 줄어들었고 무슨일있냐는 나의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너가 회사 얘기를 털어놓는게.. 너까지 나한테 취업못했다고 무시하는 것처럼 들려'
나중에 자세히 이야기를 나눴을 때 공부하는 와중에 내 회사생활 얘기를 듣는게 너무 힘들다고 이야기를 하는 그를 보며
그의 공부에 방해가 되면 안되니까 회사에서 힘들었던 이야기는 일기장에 적어야겠다 생각했다.
그 때부터 적었던 일기가 지금은 몇 권이나 되는데 힘들때 글로 적어보는게 생각보다 생각 정리에 도움이 된다.
그럼에도 일기장보단 사람이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게 몇 배는 행복하게 느껴지는데
친구들이 내 고민을 들어줄때면 궁금하지 않을텐데.. 듣는 것도 집중하려면 피곤할텐데.. 생각하며
최대한 간결하게 이야기하려고 노력한다. 끝까지 들어주는 친구들을 보며 항상 고맙게 생각하는 마음..
그때는 그와 나는 서로를 이해할 수 없었다.
각자 서운한 지점이 달랐고 상황이 달랐으니까
사회의 지저분함을 몰랐던 그는 나에게 그렇게 말할 수 밖에 없었고
2년간의 공무원 시험이 얼마나 그를 피마르게 했는지 그 깊이를 몰랐던 나도 그가 예민하다고 생각했다
우리의 대화는 줄어들었고, 멀어졌고, 그렇게 서로에게서 제일 먼 사람이 되었다
5주년이 되던 날 날에도 나는 늦은 회식으로 밤 12시가 넘어 집에 귀가했는데
특별한 날인데 이렇게 지나가서 아쉽다는 내 말에
남자친구는 사실 5주년인지 몰랐다며 미안하다고 말했다
얼마 지나지않아 퇴근길 통화를 끝으로 우리는 더 이상 연락하지 않았고
그렇게 잊혀지듯 헤어졌다.
만신창이었다.
이 회사에 들어와서 잃은게 너무 많았다
전직장에서 유일한 희망이었던 부서이동은 바쁜 연말일정에 더더욱 뭍히는 듯 했고
몸은 점점 더 망가져 1자로 걷는것도 힘들어졌다
회사 복도를 걸으면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고 팀장님이 건너편으로 보이면 눈앞이 흐릿했다
마지막에는 이상하게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는데 회사 밖으로 나와도 가슴이 답답하고 호흡이 힘들었다
연말쯤 부터는 하혈하기 시작했다. 생리가 길어지나.. 일 주, 이 주, 삼 주가 지나도 피가 많이 나왔다
한 달 내내 생리대를 붙이고 다니니 피부는 짓무르고
피를 많이 흘리니 업무중 어지러운 경우도 많았다
집에는 얘기하지 않았다.
이미 나를 많이 걱정하고계시던 부모님을 더 이상 마음아프게 하고싶지 않았고
부서이동만 하면 모든것이 해결될 것이라고 믿고있었다
꼭 이 회사에서 인정받고 부모님에게도 금의환향 하고싶었다
그렇게 10월 말 회사에서 큰 업무가 주어져서 1박2일 출장을 가게되었다.
회사에서 신입사원이 지방으로 출장가는 사례는 없는데 특수한 경우라고 했다.
지방에 위치한 담당계열사에서 신규 시스템 오픈이 진행중이었는데
이것은 타부서인 개발팀이 지방에 상주하면서 몇 달 간 준비한 프로젝트였다
그런데 내가 담당한 시스템과 프로시저, 트리거 같은 것들이 충돌이 나면서..
기존 시스템과 신규 시스템사이에 말도안되게 많은 충돌들이 일어난 것이다
담당계열사에 홀로 담당자를 맡고있었기 때문에 같이 출장을 갈 사람또한 없었고..
어쩔 수 없이 부서이동이 계획되어 있던 신규부서 책임님이
시스템을 처음 만드신 분이기도 하고, 앞으로 같이 일하게 될 팀원이니 같이 가주신다고 하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 팀에서 해결해줘야 할 문제를 왜 옆 팀 책임님이 해결하게 떠맡긴건지
이해가되지 않는 부분이다. 아무리 개인적인 감정이 있다고해도 나몰라라 할 부분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그렇게 지방출장을 함께 해주신다고 하셔서 책임님과 둘이 부산으로 출장을 가게되었다.
출장을 신입사원이 갔던 이례가 없으니 가이드라인 같은 것도 없었다.
상사분들에게 물어도 모른다고 답할 뿐이었다.
출장이 정해진 바로 다음날 부산으로 출발해야 했다. 오후에 알려진 출장에 바로 다음날 출발해야 한다니..
게다가 출장후에는 코로나백신을 필수로 접종받고 회사에 출근해야한다고 했다.
출장후에도 이어질 업무라는게 뻔히 보여서
이번 건 마무리 된 후 코로나 백신을 접종받으면 안되겠냐고 했더니
그러면 회사에서 무리하게 업무를 시키는걸로 위에 보고가되니, 기한안에 출장 다음날 백신을 바로 맞아야 한다고했다.
코로나 백신은 알다싶이 고열과 근육통을 동반한다. 그래서 나라에서도 백신을 맞고 하루는 강제적으로 쉬게 되어있는데
백신을 맞고 연차를쓰면.. 담당계열사 시스템을 봐 줄 대타라도 있는가..? 그렇다. 결국 출장 이후 백신맞고 출근해서 그대로 일했다
퇴근 후 '엄마 나 내일 부산으로 출장가'라는 말에 어머니 표정이 그렇게 일그러지는 것을 처음보았다
'너 당장 거기 그만둬. 재취업 할때까지 엄마카드 줄테니까'
'그건 무책임하잖아. 나 괜찮아 엄마'
'너 지금 화장실가서 거울 좀 봐. 그게 사람얼굴이니?! 해골같아 지금 너!!! 곧 죽을 것 같다구'
어머니는 진심으로 걱정하셨고 처음으로 '아 이게 아닌가' 고민했던 것 같다
다음날 짐 가방을 매고 출근한 나에게 팀장은 물었다.
'비행기 표는 예매했어?'
'네..? 비행기 표를.. 제 돈으로 예매해요..?'
'당연하지. 니 돈으로 예매하고 나중에 청구해야지. 그래서 지금 예매를 안했다고?'
그렇게 훈수를 둘 뿐. 팀장은 아무것도 도와주지 않고 나를 빼놓은 점심 회식을 하러나갔다
결국 책임님과 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이동중에 책임님이 공항표를 예매했고
다음은.. 숙소 문제가 남아있었다
전 직장에는 회식문화가 마치 영업사원처럼 자리잡고 있었는데
책임님은 부산으로 가는 비행기안에서 얘기했다
회사에서 제공되는 공장옆의 숙소에서 묵으면, 업무끝나고 계열사 부장님들과 회식자리에 참여한다는 것이었고
그게 불편하면 자기만 참여할테니 대신 조금 위험한 부산 유흥거리에 모텔방을 잡고 자야한다는 것이었다
한번도 모텔방에 혼자 방을잡고 자본적이 없었던 나는 무서웠지만
먼 지방에서 아저씨들 사이에서 혼자 술자리를 해야한다는게 더 무서운 일이었고, 차라리 개인적으로 모텔방을 잡고 묵겠다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그건 회사 막내직원으로써 오답을 이야기 한 건지.. 그냥 회식자리에 참여하라는 책임님 말에 끝까지 따로 묵겠다고 입장정리를 했다.
그렇게 업무가 끝나고 처음와보는 부산 유흥거리 모텔방에 누운나는 이불에 얼굴을 파뭍고 처음으로 소리내어 엉엉울었다.
너무 무서웠고 두려웠고 이렇게까지 일해야하나.. 이러려고 그렇게 열심히 공부한건가 회의감이 들었다
경험해보기 전에 모르는것이 당연했지만 그렇게 준비없이 투입된 출장이 너무 버거웠고
팀 단위로 동기들과 갔다면 다를수도 있었겠지만 회식문화가 강요되는 이런 출장에 다시는 참여하고 싶지않았다
스트레스를 받으니 피가 더 많이나왔다. 타지에서 배를 움켜잡고 밤새 잠을 설치다가
그러면 안된다는 거 알지만..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엄마 나 지금 배가 너무 아파'
당장 차를 몰고 데리러온다는 아버지를 겨우말리고 엄마는 진지하게 말씀하셨다
'엄마는 너가 이렇게 망가지는 모습을 볼바에야 그냥 차라리 너가 일안하고 집에서 쉬는게났다.'
'내가 너를 강하게 키운건 맞는데 이렇게 후회되는 순간이 없어. 이제는 그만 버텨'
그렇게 퇴사를 고민하며
다음날 돌아오는 기차역에서 팀장님에게 보고 전화를 걸었다. 왜냐하면 팀장님은 보고 전화를 중요하게 여기셨기 때문에
'팀장님 긴급건 처리 완료하였구요. 남은 작업이 조금있어서 그건 출근해서 마저 작업하도록 하겠습니다. 현업분들께 인사드리고 돌아가는 길입니다'
'...'
'팀장님?'
'ㅇㅇ씨 인성이 이상한 거 알고있었지만 일단 오늘은 내가 휴가인 날이구요. 상사 휴가 날짜정도는 인지하고 있어야하는거 아닌가?'
'죄송합니다..'
'그리고 보고 전화를 왜 지금해요? 어제 도착했을때 전화했어야지. 또 순서가 잘못됐잖아.. 일단 알겠고 출근해서 이야기합시다. 위에 팀장님한테도 꼭 보고전화 드리고!'
그렇게 퇴사 고민은, 고민이 아니라 결정이 되었다.
기차에 올라 눈을 질끈 감자마자 5분이 채 안되었나 또 업무전화를 받았고
버그가 새롭게 발견됐다는 소식에 그 자리에서 노트북을 펴고 기차가 서울에 도착할 때까지
코드를 수정했다.
코로나 백신을 맞은 채 근육통에 시달리며 야근을 마친 나는
동기들에게 먼저 이 사실을 알렸고 1년간의 괴롭힘을 옆에서 같이 목격한 동료들은
잘 버텼다며 말리지 않았다.
팀장에게 이쁨을 받던 동료는 처음에는 내 경험을 백프로 이해하지 못했지만
내가 퇴사한 후 그 화살은 다른곳으로 옮겨갔다며
그저 괴롭힐 누군가가 필요했던 그 팀장을 보며
힘들었겠다고 추후에 위로의 말을 전하기도 했다
퇴사를 이야기했을때 몸이 아프다고 이야기했고
몸이 아픈거면 병가처리를 해줄테니 6개월만 쉬고 다시나와서 일하라는 말에
이왕 이렇게된거 부서이동 하지말고 남아서 출장없이 지금 업무를 이어하라는 말에
치를 떨며 됐다고 거절했고 그렇게 두 달 더 일하고 퇴사했다.
일주일 내내 일하느라 돈 쓸 시간도 부족했기에
퇴사 후 나의 통장 잔고는 천만원이 넘는 액수가 담겨있었다
사실 그걸 다 써버릴 생각은 없었지만 생각보다 재취업은 쉽지 않았고
더 좋은 회사에 들어가고 싶었기에,
자격증 공부를하고 모아놓은 천만원으로 마음껏 여행도다니고 몸도 정신도 회복한 뒤
1년만에 판교의 한 연구소로 재취업에 성공했다
다음달은 재취업한 회사에서 재직한지 1년째 되는달이다.
나는 이곳에서 일하면서 수많은 칭찬을 받았고, 격려를 받고있고
단 한번도 어떤 일이 닥쳤을 때 혼자 해결한 적이 없었다.
팀장님도 동료들도 모두가 어려움이 닥쳤을 때 함께 해결해주고 정말 '팀' 단위로 움직인다
처음 입사했을때 어떤 신입이나 그렇듯 업무에 방해만되는 머저리였는데
팀장님은 매일같이 나를 회의실로 불러 격려해주시고 잘하고있다고 말씀해주셨다.
어떤날은 하루종일 버벅거리며 겨우 코드 3줄을 쳐냈던 날이있는데
팀장님은 내 뒤로 오셔서 오늘은 이만하면 됐다고 퇴근해보라고 얘기하시며
'ㅇㅇ씨 오늘 짠 코드 공유해준거 보니까 진짜 생각 많이하고 쳤던데. 아주 잘했어! 앞으로도 그렇게만 해줘~'
그렇게 나는 팀장님 밑에서 뼈를 뭍기로 결심했다
팀장님 뿐만아니라 동료분들도 다들 너무 좋은 사람들뿐인데
한 껏 긴장해서 입사한 나를 어르고 달래며 웃으면서 농담까지 할 수 있게 만들어준게 지금의 동료분들이다.
이 전 직장에서도 물론 좋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문화라는게 그렇지 않은 사람들까지 그렇게 물들여 버리는게 있으니
깊은 대화를 나눴던 기억보다는 주식이나 펀드얘기만 1년 내내 나눴던 기억이 나는데
지금 직장에서는 하루하루 사는 얘기부터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가장 많이 나누는 것 같다
다들 회사에 전부를 걸지 않는다는게 느껴진다.
회사에 있는 시간에는 업무에 충실하고 퇴근후에는 각자 자신만의 삶을 만들어간다
그리고 그렇게 만든 퇴근후의 시간을 서로 공유한다
그런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나도 이제는 직장이 전부가 아니라는걸 알고있다.
내가 행복해야 내 일도 더 잘할 수 있고. 그래야 다음 스텝을 밟을 힘도 생긴다는 것을 안다.
팀장님은 퇴근 후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고
부장님은 주말에 철인 3종 경기에 나간다
동료들은 출근길에 운동을하고, 길게 야근하지 않는다
전 직장에서 연차를 모두 돈으로 돌려받았던 나는
이제 주기적으로 연차를 사용하고, 도움이 필요하면 팀장님에게 어렵지않게 부탁드린다
진심으로 같이 일하는 사람들을 걱정하고, 내 몸을 돌보며 일하게 되었다
업무도 이전부터 배우고싶었던 일을 차근차근 배워나가고 있다
그럴 수 있게 주변 동료들이 도와주고있고
퇴근 후에는 여유있게 책을 읽기도하고 헬스장에도 주 4~5회씩 나간다
나는 지금 몸도 마음도 건강하다.
만약 누군가가 전 직장과 비슷한 곳에 지금보다 훨씬 높은 연봉을 제안한다고 해도 이직하지 않을 것이다
이 부분은 같이 일하는 동료들도 똑같이 얘기하는데 좋은 사람들과 함께 일할 수 있다는게
얼마나 흔치않고 소중한 기회인지 모두 알고있기에 다들 만족하는 마음으로 다니는 것 같다.
잊고있던 전직장 이야기를 꺼내놓게 된 이유는
어제 전직장 동료의 결혼식에 갔다가, 전 직장 동료들을 여럿 마주하게 되면서
이전에 겪었던 일이 모두 떠올라 버렸기 때문이다
사실 익숙해지고 있었다. 지금 회사에서의 편안함도 몸의 건강함도
당연한 게 아닌데 또 당연해 질 뻔 했다.
언젠가 지금 회사에 불만이 생길때면 꺼내보려고 적어보았다
그리고 또 나를 아무렇게나 굴릴 미래의 나에게 정신차리라고 보여주기 위한 용도이다
이 글을 읽고있는 당신이 만약 너무 힘든 환경에서 버티고있는 중이라면 한 번 더 생각해보길 바란다
이직이 어렵고 퇴사후 힘들어지는 건 현실이지만
마음이 망가지면 그걸 돌이키려고 할 때 타이밍을 놓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나는 퇴사 후 나처럼 불합리한 일을 겪은 사람들의 에세이를 많이 읽었다.
그들은 버티고 망가지다가 공황장애까지 얻는다.
내가 지하철에서 엉엉 울었을 때, 복도에서 눈이 흐려졌을때, 숨이 잘 안 쉬어졌을때
나도 아마 공황장애 직전이었던 것 같다.
나와 같이 퇴사를 고민하던 한 남자 동료분이 계셨는데
그 분은 대기업에서 10년간 일하다가 이직해오신 분이었다.
팀장님은 그 분 역시 싫어했는데 그 이유는 회의시간에 신입사원이 질문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 분은 나랑 비슷한 성향이었다. 이해되지 않는 일은 진행하지 않았고
잘 못 되었다고 생각하는 문제는 그게 아무리 상사라고 해도 꼭 짚고 넘어가는 사람이었다.
몇 개월간의 프로젝트가 끝났을때 그 프로젝트에 대한 비용 산정을 부장급들 사이에만 공유되고
사원, 대리, 과장 급에게는 공개되지 않았던 문화에
그 남자 동료분은 회의시간에 질문을 던졌다
'이건 정말 궁금해서 질문드리는건데.. 프로젝트 비용산정이 공개되지 않으면 저희가 어느 수준에 맞춰 개발을 진행해야 하는지 가늠하기 힘들 것 같아서요'
팀장-'개발 기한이 나와있으니까 그 기한에 맞춰 진행하면 됩니다'
'비용이 공개되야 어떤 기준으로 야근을하고 어느 수준의 코드를 제공할지 생각하고 코드를 짤 수 있을 것 같아서요'
팀장-'ㅇㅇ씨가 다녔던 그 대기업에서는 그런 거 다 생각하고 개발했나본데, 우리는 아니야'
'여기서 왜 전 직장 이야기가 나오는지 모르겠는데.. 저는 그저 앞으로도 이렇게 공개하지 않을 생각이신지 궁금해서 여쭤봤습니다'
그 사건 이후로 그분또한 많은 미움을 받게되었고
나보다 늦게 입사하신 그분은 나보다 빨리 퇴사를 결심하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굉장히 현명하신 분이라는 생각이든다.
그 분과 한 번 퇴근길에 나도모르게 힘든티가 났던 것 같은데.
나한테 이런 이야기를 해주셨다.
'힘들면.. 너무 무리하지 말고 그만둬도 괜찮아요.
제가 다녔던 전 직장도 그렇게 좋은 회사는 아니었는데
그 때 직장동료가 갑자기 숨이 안 쉬어진다고 하더라구요
건강 문제겠거니 다들 그러고 말았는데.. 나중에 공황장애 판단을 받았어요
원인은 직장이었고 결국 퇴사하고 안정을 취한다고 했는데
이미 많이 심각해져서 몇 년 째 일 못하고 쉬고계세요'
아마 그때쯤 나도 숨이 안쉬어진다는 얘기를 자주했던것 같은데
공황장애가 뭔지도 몰랐고, 그렇게 쉽게 찾아오는 병인지도 몰랐다
그 때 나한테 너무 필요한 경고였어서 나중에 연락이 닿으면 정말 감사했다고 전하고싶다.
너무 고되면 그건 당연한 것이 아니다.
좋은 기업에 다니는 것이 인생의 영광이 아니고
큰 돈을 만지고 있다고해서 그게 영원할 수 는 없다
하지만 건강함과 긍정은 오래간다.
내가 넘어졌을 때 나를 일으키는 힘이 되고, 남이 나에게 상처를 줄 때 스스로를 지키는 힘이 된다
내가 그곳에서 버티지 않고 1년만에 빠져나온 것은 정말 잘 한 일이다.
물론 퇴사하고 1년간 재취업이 되지 않았을 때 후회했던 순간도 분명 있었지만
그걸 버티고 지금 회사에 입사하기까지
전직장과 비슷한 무례한 면접들을 거절한 과거의 나에게 박수를 치겠다
힘들면 그만둬도 된다. 화가나면 화를 내도 된다.
그걸 참다가 내가 병이나느니 잘 못 됐다고 지적해야 한다.
내가 예민한게 아니고 오바를 떠는게 아니다.
나보다 위에 있는 사람이 하는 말이라고 모두 받아먹지 않는 그대들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