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툴바

블로그 이미지
Hi.K
이 블로그는 컴퓨터 기반의 미디 작편곡 및 믹스 마스터링과 전혀 관계없는 경영전략에 대한 김효일의 (Hi.K) 개인 블로그 입니다.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Notice

Statistics Graph

인천공항 매각.. 그 단순한 이유...





인천공항 매각..


1. 이슈 

인천공항을 매각하려 하는 정부..


공항의 선진화 지향이라는 목적으로 49%의 지분을 순차적으로 판매하려 하고 있다.


2. 상황

현재 뉴스를 통해 살펴보면...

정부는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인천공항 지분매각에 나선다. 2010년도 예산안을 들여다보면, '교통시설 특별회계' 중 '공항계정'에 '유가증권 매각대금 5909억 원'이 포함돼 있다. 정부는 예산안 발표 당시 "세외수입으로 잡힌 5909억 원은 인천공항 지분 매각대금"이라고 밝혔다.

 그렇다면 5909억 원이 매각 예정인 49%의 지분 중 얼마에 해당하는 금액일까? 이와 관련 입을 다물었던 정부는 최근 국정감사에서 "인천공항 매각대상 지분 49%의 1/3을 주식가치 5000원 기준으로 산출했다"고 밝혔다.

 즉 5909억 원은 전체 지분의 16.3%에 해당하는 금액이고, 이를 내년에 매각하겠다는 것.

 문제는 정부의 셈법대로 하면 인천공항의 가치는 3조 6251억여 원밖에 안된다는 점이다. 이는 장부상 자산가치인 8조 2000억 원(순자산가치 4조 1000억 원)이나 공시지가를 반영한 자산가치 11조 7860억 원(순자산가치 7조 6760억원)에 훨씬 미달하는 금액이다.

 '헐값매각'이라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다만 정부의 계산이 시장가격이 반영되지 않은 액면가(5000원)를 기준으로 이루어졌다는 점만은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 실제 인천공항 가치가 3조6251억여 원보다 클 것이기 때문이다.

 장부상 순자산가치와 공시지가를 반영한 순자산가치를 주식으로 환산하면, 각각 주당 5666원과 1만610원이다. 주당 1만 601원으로 계산하면 인천공항 가치는 약 7조7000억 원에 이를 전망이다. 일각에서는 이보다 3배나 많은 20조 원대라는 추정도 나오고 있다.  

 국토해양부는 "기획재정부가 인천공항사의 지분가치를 단순 계산한 추계치"라며 "실제 매각대금은 매각의 방법, 시기, 물량 등이 결정된 이후에 산출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출처 : '황금알 낳는' 인천공항 왜 지금 민영화하나? - 오마이뉴스


이러한 뉴스를 살펴보면.. 정부가.. 일부러 공항을 저평가해서... 헐값에 판매를 한다고 하는 것이다.

그 이유는.. 4대강 사업, 부자감세 등으로 인한 구멍난 세수를 매우려고 한다는 것이다.

이는 경제력 강화, 3단계 투자비 확보를 위해 인천공항을 판매하려 한다는 정부의 의견과 상당히 엇나가 있다.



그렇다면.. 인천공항을 꼭 팔아야 하는가??

이러한 의문점을 해결하기 전에 먼저.. 살펴봐야 할 것은

지금 한국 정부의 현금 보유 정도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여러 경제 전문가나 국내외 언론에서 한국의 정부는 현금을 그리 많이 보유하고 있지 않다고 기사를 쓰고 발표를 하고 있다. 이는 뉴스 혹은 네이버 다음 등을 검색해보면.. 쉽게 발견할 수 있는 내용들이다.


그렇다면 정부는.. 바닥난 현금을 매꾸기 위해서 어떤 일을 해야하는 것인가??

물론 장기적으로 세금을 확보하는 방법도 있지만... 공기업이나 공토지 등을 판매하여 유동적이지 못한 자산을 현금화 시킬 수 있는 방법 역시.. 바닥난 현금을 매우기 위한 방법이 될 것이다.

여기서 생각해 봐야 할 것은 후자를 택했다는 것은.. 한국 정부가.. 현재 나름 위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단기적인 현금 보유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공기업 중 혹은.. 정부의 자산을 매각하여 현금을 보유하려 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인천공항인가???


이는 너무나 쉬운 경제적 논리가 내포되어 있다.

누구든.. 어떠한 가치를 누리기 위해서 돈을 주고 물건을 구입한다. 그리고는 그 물건을 만족하면서 사용한다. 하지만.. 이는 투자의 개념은 아니다. 단지 그 물건의 가치를 현금과 교환하여 사용하는 것이다.

따라서... 누구든지.. 그 가치를 위해서 구입을 하는 사람은.. 그 물건을 사용하는 것 이외에는 관심이 별로 없다.


그렇다면.. 투자를 하는 사람들은 어떠한가??

투자를 위해서 물건을 사고, 주식을 사고, 기업을 사고, 여타 국가의 환을 사는 사람들의 경우.. 그 Stuff ( 특정 것)를 구입한 이유를 들어보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금액이 낮고.. 미래에 판매하면 가격이 오를까봐 구매한 것이라고.. 100이면 100 말을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인천공항의 경우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미래 가치를 다 보유한 상태라면.. 그 가치를 구입하고 싶고.. 그 가치를 누리려 하는 사람들이 구매를 할 수도 있지만.. 이러한 사람들은.. 아주 소수인 것이다. 거기다가 49%의 주식을 구입한다 하더라도 51%의 주식을 가지고 있는 정부 때문에 그 가치를 맘대로 활용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주식을 판매하려면... 투자를 목적으로 구입을 하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이를 구매하지 않을 것이 자명하다. 이는 그냥.. 간단한 경제 논리인 것이다.


따라서 정부는.. 현금을 줄 수 있는 사람들 혹은 기업들에게.. 미래의 가치를 생각하면서 구입을 해라.... 나 급하다.. 빨리 팔아야 현금 확보해서.. 우리나라 운영할 수 있거덩.. 이러는 말을.. 속으로 외치고 있는 것이다.

미래에 누릴 가치보다.. 현재가 급하단 얘기다.. 즉.. 우리 나라 상태 별로 좋지 않단 얘기인 것이다..

그 금액을 포기할 정도로....



여튼.. 인천공항 주식을 헐값에 매각하려 하는 정부는.. 이러한 속 사정이 있기 때문인 것이다. 

posted by Hi.K

이용하지 말았으면..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임기말.. 지지율과 당시 상황을 생각해보자.

그리 높지 않은 지지율과 빨리 정국이 바뀌었으면 했던... 대다수의 사람들.


그러나 분명히 중요한 것은.. 노무현 대통령의 노력과 업적은 정말 대단한 것이 아니라 할 수 없다.

주변의 도움이 아닌 본인이 스스로 열심히 했을 때 한 나라를 책임지게 되는 대통령의 자리에까지 오르신 것

이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냉정히 돌아볼 필요가 있다.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움직임이.. 너무 보이고 있지 않은가..

임기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민주당을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던 수많은 사람들...

노무현 대통령의 핵심 인물들을 제외하고는.. 오히려 당에 안좋은 영향을 준다고 당을 나가길 바랬던 사람들..

그게 누구였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오늘 신문을 봤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민장이 40만명을 웃도는 대규모 추모인파 속에 마무리되자 야권이 대여공세의 고삐를 죄기 시작, 조문정국의 후폭풍이 정치권에 몰아칠 조짐이다.

민주당은 정부여당에 노 전 대통령 서거에 대한 책임론을 본격 제기하는 등 강공을 예고하고 있다. 정세균 대표는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수차례에 걸쳐 "사과해야 할 사람들이 사과를 하지 않는 것은 분명히 잘못됐다"며 "확실하게 따질 것은 따져야 한다"고 밝히며 벼르고 있다.

당내에선 이명박 대통령의 공개사과와 법무장관 및 검찰총장 경질, '박연차 게이트'에 연루된 현 정권 주변인사들에 대한 특검이나 국정조사 실시 방안 등이 검토되고 있다. 정 대표는 이르면 오는 31일 기자회견을 갖고 당 차원의 입장을 밝힐 것으로 전해졌다.

민주노동당 등 진보진영도 노 전 대통령의 서거와 관련해 정부를 비판하고 나섰다. 우위영 민주노동당 대변인은 영결식이 열린 29일 애도 논평을 통해 "전직 대통령마저 피해가지 못한 억압정치에 분노한다"고 했고, 진보신당 이지안 부대변인은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정치보복 규명을 위한 특검실시와 책임자 처벌, 국정 운영기조의 전환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한나라당은 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정치공세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윤상현 대변인은 "노 전 대통령의 서거는 우리에게 큰 충격과 슬픔을 남겼고, 우리 국민은 가시는 길이 결코 외롭지 않게 슬픔을 함께 했다"며 "노 전 대통령께서 남기고 가신 순수한 뜻, 생전의 그 꿈과 이상은 남은 자의 몫이 됐다. 우리 모두 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통합과 평화로 승화시키는 계기로 삼아내는 성숙한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출처  헤럴드 생생뉴스



맞는 말이다.


과도한 수사와 그로인한 전대 대통령의 서거.. 분명히 명확하게 집고 넘어가야할 문제인 것은 확실하다.

그럼 그 것은 누가 해야하는가??

민주당, 민노당 등의 정치인들이 해야하는가?

쓰면 버리고 달면 삼키려는...

흥분된 국민의 마음을 이용하여 당의 지지율을 높히고자하는

너무나 뻔한 그림이.. 그려지기에... 답답하다..

제일 안타깝고 안쓰러운 정치인들은.. 지금은 민주당이 아닌, 혹은 아주 소수의 민주당원 중 친노세력이 아닐까

그들도 과연 이 사건을 통해 무언가 큰 꿈을 꾸고 있을까?

충성을 맹세한 장수를 하늘로 보낸 이들은.. 결코 그러지 않을 것이다.





기존 대통령 중 가장 훌륭하고 멋진 분이셨던 노무현 전 대통령님의 명복을 빕니다.
posted by Hi.K

미네르바 피해로 20억 달러? 대통령님의 말씀은??






12일 검찰에 따르면 박씨가 지난해 12월29일 오후2시께 이 글을 올리자 달러 매수세가 급등, 오후2시30분 이후 장 마감까지 달러 매수 주문이 하루 거래량의 39.7%에 이를 만큼 달러 매수가 집중됐다고 검찰은 파악한 것으로 전해졌다.

평소 이 시간대 달러 매수 주문은 하루 거래량의 10∼20%라는 것. 또 글이 오른 이튿날인 12월30일까지 이런 달러 매수세가 이어져 이날 달러 수요량이 1일 평균 38억달러보다 22억달러 더 많은 60억달러로 비정상적으로 치솟아 환율 안정을 위해 정부가 외환시장 안정화 비용으로 20억달러 정도를 더 지출해야 했다고 검찰은 추산했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박씨는 자신의 글로 달러 매수세가 높아지고 이 때문에 환율을 안정시키려는 정부의 외환보유액이 막대하게 소모될 것을 알면서도 이 글을 게시했다고 본다"고 밝혔다.

검찰은 또 박씨의 글이 해외로 전해져 우리나라의 대외신인도가 떨어졌고 정부 경제정책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지는 등 무형의 손해도 발생했다고 판단했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박씨가 문제의 글을 올린 지난해 12월29일에는 미네르바가 무명의 개인이 아니고 '경제 대통령'으로 불릴 만큼 상당히 주목 받는 시점이어서 자신의 표현물에 책임의식이 있었어야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외환전문가들은 연말에는 늘 국내 기업들의 달러수요가 넘치기 때문에 달러 매수가 집중되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는 지적도 내놓고 있어 검찰이 추산한 외환보유액 20억달러 추가 소진에 대해서도 또 다른 논란이 일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외환시장 일각에서는 문제가 된 12월29일 미네르바의 글이 외환보유액에 20억달러 손실을 끼쳤을지는 의문이라는 분석도 내놓았다. 미네르바가 인터넷상에서 경제 비평가로 유명하지만 프로인 외환딜러들이 주도하는 외환시장이 외환 거래를 해본 적도 없는 비평가의 글에 휘청거린다는 것은 다소 과장된 주장이라는 것이다.    출처 - 서울경제


최근 구속된 미네르바의 죄목은.. 허위사실 유포.. 손실액은.. 20억불이라 한다.

검찰은 이러한 손실액으로 인해 미네르바를 구속시켜 사법처리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인터넷 논객이라는데.. 이 사람의 영향력과.. 이명박 대통령님의 영향력.. 둘 중 누가 더 영향력이 클까?


이명박 대통령이 내세운 747공약과 주가 5000달성... 과연 이루어 질까?

이명박 대통령께서는 지금 취임시 주식을 사면.. 추후 크게 성공할 것이라 말씀하셨다.

이명박 대통령 후보는 대통령이 되었고, 많은 사람들은 경제대통령이 나왔다고 너도 나도 주식 매수 포지션을 취했다.

그러나.... 취임 되자마자.. 1년이 안되어 주가가 860까지 떨어졌다.

온갖 신문에서는.. 대통령님 말만 믿고 주식을 샀다가 집까지 팔아야된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2년 후에 유학가려 했었는데.. 그 공약 믿고 모아둔 돈을 주식에 넣었다가 반토막 났다는 기사가 허다하다.


지금 시점에서 누가 누가 잘못했고 잘했냐를 따지자는 것이 아니다.

정부의 고위 간부들.. 국회의원... 검찰...  왜 미네르바 때문에 온갖 신경을 그 쪽으로 다 쓰고 있냐가 문제인 것이다.


정말 다 있는 자료로 인터넷에서 짜집기 해서 글을 올린 것이라면.. 그냥 냅둬라.. 온갖 관심을 우리 나라 경제 살리는데 집중하면 안될까?


간절한 부탁이다.


posted by Hi.K

[HBR] The Thrtuous Evolution of the Multinational Corporation 리뷰





Title : The Thrtuous Evolution of the Multinational Corporation

Author : Howard V. PERLMUTTER

Publish : Columbia Journal of World Business

A. 논문요약

세계에는 다수의 다국적 기업이 있음. 이러한 다국적 기업들은 여러 가지 특징을 보이는데 크게 4가지로 나눌 수 있음. 첫 번째는 자사의 제품을 다수의 해외국가로 수출하는 경우고, 두 번째는 해외의 다수 국가에 진출해서 각 나라의 관리자를 두는 것이며, 세 번째는 자국의 회사 역시 여러 지역의 지사들과 마찬가지로 여기는 경우이며, 마지막은 본사에 타국 관리자 다수를 두는 것임. 이러한 여러 가지 특징을 통해 살펴보면 다국적 기업은 3 가지 단계로 진화하는 것을 볼 수 있음. 이를 EPG Profile이라 함. 자국 이기주의(E), 다문화 주의(P), 지역주의(G)를 거치면서 방해물과 비용을 최소화 하며 다국적 기업은 진화함.

B. 한계 및 공헌

a. 한계

1) 진화의 타당성을 알기 힘듬.

2) 논리적으로 뒷받침되지 못함.

3) 오히려 역행 한 사례를 있지 않을까 의문이 듬.

4) 구체적인 기업의 사례가 다수 제시 되지 못해서 진실성이 부족

b. 공헌

1) 각 기업이 처한 상황에 맞는 비용과 장애물 제거를 할 수 있도록 함.

posted by Hi.K

[HBR] Lincoln Electric`s Harsh Lessons from International Expansion 내용정리 및 소감





Title : Lincoln Electric`s Harsh Lessons from International Expansion

Author : Hastings, D. F. (1999)

Publish : Harvard Business Review, 77 (3), pp. 163-1782

A. 논문요약

Lincoln Elocetric Campany는 미국을 베이스로 한 회사임. 국내에서의 성공을 자만하여 자사의 특정문화와 인센티브 시스템을 바탕으로 직접투자를 중심으로 해외 진출을 시도함. 기업을 인수 합병하는 등 급격하고 무리한 해외진출과 더불어 문화적 차이와 인센티브 시스템 도입의 어려움은 Lincoln을 엄청난 재정적자의 상태로 만듬. CEO가 된 필자는 두 가지 대안을 가지고 고민하다가 모든 종업원과 함께 어려움을 해결하고자 함. Lincoln의 기업문화와 필자의 Leadership이 잘 결합되어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고, 비전이 없는 해외시장을 축소하고, 미국공장의 효율성을 극대화 시켜 어려움을 해결하게 됨.

B. 논문내용

1992년 7월의 어느 금요일 저자는 Lincoln Elocetric campany의 CEO가 되었음. 그러나 그가 CEO가 된지 24분 만에 기쁜 감정이 사라짐. 회사의 CFO인 Ellis가 지난 6월 유럽 시장에서 750만불의 손실이 발생했다는 비보를 가져옴. 따라서 은행과의 대출금 상환 계약을 지키지 못하게 될 것이 예상됨. 자사의 가장 큰 시장인 미국에서의 이익으로도 상쇄시킬 수 없는 손실임. 이와 더불어 남미와 일본에서도 지속적으로 손실이 발생함.

한주 후에 유럽을 비롯한 해외의 운영자들과 집에서 미팅을 갖았고, 대화를 통해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시킴. 그들에게 저자가 사업 방향을 바꿀 것에 대해 말했지만, 유럽의 3/4분기는 휴가와 휴일 때문에 성과를 나타내기 힘들다는 비관을 함. 게다가 일본과 남미에서 지속적으로 성과가 감소할 것이라고 예측함. 더욱이 미국의 종업원들은 좋은 성과를 달성했기 때문에 약 3000명이 총 5000만불의 인센티브를 받기로 되어 있음.

이 회사의 보너스가 왜 중요한지 이해할 필요가 있음. Lincoln Elocetric campany는 1920년에 생겨났고, 지속적인 성장을 거듭하며 전 세계적으로 용접제품 산업을 이끌었음. 수많은 경쟁을 뚫고 거대 6개 기업만 살아남았으며 1992년에는 작년대비 87%의 성장을 거두었고, 전극, 전선 용접, 사업의 핵심이 되는 소비재 들로 점유율 40%를 달성함.

1934년에 개발된 Lincoln의 인센티브 시스템은 보너스와 한 사람의 하루 생산량이 결합되어 있음. 이 시스템은 오랜 기간 동안 다른 미국 회사들 구별되어왔고,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에서 유명한 케이스 스터디 주제가 되어 왔음. 역사적으로 보너스는 미국의 노동자들의 일년 수입의 50%보다 더 많음. 그리고 그 시스템은 세계적으로 고액 공장 노동자들로 랭크되게 함.

a. The Rush to Globalize.

어떻게 우리가 이런 상태가 되었는가? 급진적인 해외 확장 때문임. Lincoln이 약 40년 이상 케나다, 호주, 프랑스에서 제품을 생산하고 마케팅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세 나라는 서로 독립체로 여겼음. Lincoln은 처음에 미국에 있었음. 그리고 두 개의 주요 공장은 여전히 Cleverland지역에 있음. 최근 우리를 어려움에 빠트린 큰 규모의 해외 벤처 기업들이 생겨났음.

1980년대 대공황 때 우리는 해외로의 확장을 주장함. 이는 국내 시장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기 위함임. 그러나 1980년대 CEO였던 Willam Irrang는 이를 부정적으로 여김. 그가 죽고 George E에 의해서 해외진출이 시작되었고, 그 당시 Willis Ted와 나는 북미 지사의 사장이었음.

Ted는 Lincoln이 글로벌 파워를 갖는 것을 꿈꿨음. 그는 즉시 Harris Calorific을 인수함. 그 회사는 이태리와 영국에 산소 절단 기구를 만드는 공장을 가지고 있었음. 비슷한 시점에 우리는 한통의 전화를 받았음. ESAB라는 스웨덴 제조업체가 미국의 중견 규모의 제조업체를 인수했다는 소식이었음. ESAB는 이미 동부지역과, 라틴아메리카에서 비즈니스 활동을 하고 있는 글로벌 마인드를 가진 기업이었음. ESAB는 미국 시장 확대를 통해 미국 시장의 점유율을 높일 수 있었음. 반면 우리는 독점금지법 때문에 국내 경쟁자들을 인수할 수 없었음. 그래서 우리는 유럽과 라틴아메리카에서 ESAB와 전쟁을 하기로 함. 우리는 신속하고 실효성있게 움직여야 했음.

Willis의 체재가 5년 동안 지속되는 동안 해외로의 확장을 위해 회사규모에서 생각하기 힘든 약 3억2500만 달러를 사용함. 독일, 노르웨이, 영국, 네덜란드, 스페인, 멕시코에 있는 여덟 개의 공장과 함께 일본과 베네수엘라 브라질에 공장을 세워 운영했음. 이러한 수많은 활동은 시장의 사이클과 비용을 최고치로 이끌었음. 가령 우리는 올림픽 후인 1988년에 바르셀로나에 있는 운영기관을 샀음. 그 당시 경제가 폭발적으로 성장하였고, 건설시장은 믿을 수 없을 만큼 강했음. 그 후 일 년도 안 되어 스페인의 경제는 깊은 침체기에 빠졌음.

Tad는 앞으로의 활동에 대한 의견을 제시해야 했고, 그 의견에 대해 책임을 져야했음. 그는 케나다, 멕시코를 제외한 새로운 운영기관에게 직접 보고서를 보낼 것을 요구했음. 15명의 이사들의 이사들 중 12명(링컨의 임원, 설립맴버)은 내부의 사람이었음. 따라서 Tad를 포함한 모두가 해외업무 경험을 갖고 있지 않았음. 그러나 우리는 자신 있었음. 왜냐하면 우리가 미국에서 성공했기 때문에 어디서도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임. 사실상 우리가 인수 리스트에 있던 외국 회사의 제조파트의 살펴봤을 때, 만약 우리의 전문기술과 장비, 인센티브 시스템을 잘 활용한다면 엄청난 비용절감 효과를 가져 올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함. 사실상 우리는 전기관련, 전선 등의 소비재를 미국으로부터 수출할 여력이 없었음. 그것은 여전히 치열한 상품 비즈니스이기 때문임. 따라서 이러한 상품을 수출한다면 배송비와 세금은 경쟁력 있는 가격을 책정하지 못할 것이 예상됨.

그러나 우리는 몇 가지 실수를 저질렀음. 그 중 하나는 해외 어느 곳에서든 좋을 것이라 여긴 인센티브 시스템을 유럽 사람들은 경멸한다는 것임.

게다가 우리는 유럽의 메이저 마켓인 독일을 포함하여 다수의 유럽국가에 용접기계를 수출하지 않기로 결론내림. 프랑스와 노르웨이 메이저들을 포함한 우리의 딜러들은 미국에서 디자인되고 생산된 제품을 판매할 수 없다고 말함. 그 이유는 그들 국가의 제품을 소비하려는 성향 때문임. 따라서 딜러들은 독일의 제조업자들을 인수하지 않고서는 독일에서 비즈니스 활동을 지속하는 것이 불가능 하다고 주장했음. 불행히도 우리는 어떠한 테스트도 없이 그들의 의견을 적극 반영했음. 1991년 우리는 7000만 달러보다 더 많은 비용이 들어간 용접기계 제조 공장을 포함하여 Messer Griesheim을 인수했고, 이를 한 해의 우리의 가장 큰 결실이라고 결론 내림. 그 당시 우리는 독일의 경제가 좋은 상태로 지속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었음. 우리는 독일이 다시 통일 될 것이라고 예측하지 못함. 동독을 재건하기 위한 서독 정부의 엄청난 규모의 지출은 인플레이션을 동반해 금리를 상승시켰고, 2차 세계대전 이후로 유럽에서 가장 깊은 경제침체가 일어났음.

Messer를 인수한 후 Ted는 John Gonzalez를 유럽의 공장을 책임지는 부사장으로 임명했음. john은 해외업무 경험이 없었고 마케팅과 판매에 초점을 맞추는 것에 주력하지 않았으며 유럽시장을 재배치시키지 않음. 1992년 그는 결국 부사장 직을 포기하고 Cleveland에 있는 R&D센터로 돌아감.

우리의 회사를 운영하는 것에 있어서 필요한 것은 충분한 해외 경험과 조직을 잘 운영할 수 있는 경험이었음. 하지만 이것이 많이 부족했음. 우리의 매니저들은 어떻게 해외 조직이 운영되는지 알지 못함; 또한 해외의 문화를 이해하지 못함. 결과적으로 우리는 우리의 외국 회사 사람들에게 의존 해야만 하게 되었음. Tad는 노르웨이의 공장에 있던 Norweld의 사장이었던 Rolf Jonassern을 유럽의 공장 책임자로 임용했음.(독일의 Messer사를 인수하기 전에 인수한 회사이다.) Rolf는 우리가 세팅해 논 Lincoln의 유럽 지사를 이끄는 사람으로 불림.(?) 그의 다국적 기업 운영 경험과 함께 그를 임용한 것이 최고의 선택이라고 생각함. 그는 Ted에게 직접 보고함.

나는 해외지역과 관련해서는 큰 힘을 갖고 있지 못했음. 나에게 보고하는 지역은 단지 캐나다와 멕시코밖에 없었음 그리고 사장이 되기 전에 15년 동안 판매담당 부사장으로써 수행했던 업무는 미국에 제한되어 있었음. 디렉터와 사장으로써 나는 외국의 지사들이 보내온 예산과 재정적인 보고서들만 봤음. 1991년에는 호주와 캐나다를 제외하고 그 어떤 곳도 좋은 성과를 낸 곳이 없었음. 브라질 지사는 시작부터 수지에 맞지 않는 사업이 되고 있었음. 그리고 독일, 일본, 멕시코, 베네수웰라는 결코 수익을 낼 수 없었음. 그 나머지는 비록 세계적인 공장은 아니었지만, 그 회사를 산 후 지속적인 수익이 나고 있었음. 이는 우리의 제조기술과 시스템이 그들에게 쉽게 전해졌기 때문이었음.

b. Warning Signs

그러나 내가 CEO가 됐을 때, 문제가 되는 패턴을 봤음. 개개의 유럽 비즈니스 활동에서 그들이 목표를 세울 때 극단적으로 판매와 수익을 예측하는 것이었고, 결국 Gap이 생길 수밖에 없음. 매니저들도 이를 인정함. 하지만 이들은 그러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열정이 가슴속에 없었음.

1991년 4월 위원회는 1992년 6월쯤에 광산 산업이 크게 성공할 수 있다는 정보를 줌. 나는 우리 회사가 유럽에 의존하고 있는 것에 대해 불안했으나, Ted는 큰 걱정하는 것 같지 않아 보임. Ted는 내게 유럽으로 출장 가는 것을 제안했고, 나는 유럽을 돌면서 매니저들이 수익향상에 대한 의지가 없음을 보고 깜짝 놀람. 그들은 침체를 이겨내는 것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

Lincoln의 역사에서 말해주듯이 Ted는 처음 해외확장을 단순히 제조업의 관점에서 봤음. 그는 훌륭한 엔지니어고 제조업의 실행자였음. Lincoln을 이끈 4명의 전임자들은 엔지니어링과 제조업의 기술과 지식을 가지고 있었음. 그리고 4명 모두 더 낮은 비용과 더 높은 품질을 위한 제품생산 수행을 중시했음. 너는 자동적으로 그 시장을 지배할 걳임. 판매와 마케팅이 백그라운드인 나는 품질과 낮은 제조능력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함. 일류의 제품생산 조직과 제품을 갖는 것은 굉장히 훌륭한 이점임. 하지만 유통이 발달하지 않거나, 제품을 판매할 장소와 제품을 이해하고 고객을 도울 수 있는 사람들이 연결되어 있지 않는다면 성공할 수 없을 것임.

Ted는 많은 일을 손수 했음. 그의 전임자들도 중요한 모든 것을 직접 보고 받을 정도로 많은 일을 했음. 우리의 두 번째 CEO인 James F. Lincoln는 창업자의 형제였고 1965년까지 회사를 이끌었음. James는 과거에 기록된 사람들 중 가장 빠른 회사의 성장을 이끌었음. 회사는 지속적으로 규모가 커졌고 해외로 확장하기 전에도 규모가 굉장했음. 그러나 이를 통해 작고 심플했던 과거와 비교해 볼 때 접근성과 기술 등이 제한된다는 것을 알게 됨.

이러한 문제들이 해결 되었을 때 Ted는 처음으로 효율성 제고와 비용절감을 해외 지사 제조업 전술로 삼음. 나는 고민을 하며 의원 임명을 결정함. 나는 성공이 가속될 것과 내가 유럽의 책임자가 될 것을 요청함. 그러나 의회에서는 내년까지 기다리라고 함. 1992년 경기침체가 유럽에 왔고, 유럽의 지사들은 급격히 악화되기 시작하였으며 회사 전체가 비상체제에 빠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옴. Ted는 해외 지사들이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지속적으로 해외진출을 선호했음. 그는 Lincoln의 제조능력을 바탕으로 해외 지사를 성공시킬 수 있다고 맹신함.

Ted는 1991년 10월 뉴잉글랜드 지역 매니저를 미국에서 성공했던 판매와 마케팅에 대한 기술을 가르치게 하는 목적으로 해외지사에 파견하였음.

c. Should We Pay the bonus? Could we?

Lincoln은 극단적으로 보수적인 재정을 유지하였음. 거의 7000만 달러보다 더 많은 예비금을 가지고 있었음. 그러나 1991년 우리는 이를 모두 사용하였고, 약간의 빚이 잇었음. 나를 포함한 이사들은 우리가 자금을 빌려야 한다고 주장했음. 따라서 이를 기업의 종업원들에게 알림. 이것은 종업원들에게 충격적인 문화 쇼크였음. 대부분의 Lincoln의 종업원들은 빚을 지는 것을 굉장히 무모한 것으로 여겼음. 이는 우리의 인센티브 시스템 때문임. 보너스가 소개된 이래로 종업원들에게 이익과 보너스의 공유 대신 현금을 공유하는 것을 설명해 왔음.

우선 우리는 우리의 수익을 주주를 안정시키는데 사용해야 했고, Lincoln의 미를 위해 투자해야 했음. 이것이 명백하게 되자 우리는 해외확장 자금을 빌려야 했고, 종업원들은 이를 걱정함. 빚이 늘어날수록 더욱더 깊은 근심이 쌓여갔고, 결국 이를 선임 매니저들에게 알렸음. Lincoln은 장기간 알렸고, 대화 창구를 열고 대화를 함(심지어 CEO도)

CEO로써 발령받자마자 우리가 보너스를 지불하려면 더 많은 빚을 져야만 할 것이라는 끔찍한 예측에 직면함. 반면에 우리가 보너스를 지불하지 않는 다는 것을 알리면 신용도가 떨어질 것임. 새로 함께하게 된 Harris Calorific의 종업원들을 제외하고는 모든 미국의 종업원들은 보너스를 받을 자격이 있었음. 특히 Rank-and file Factory의 종업원들은 일 년 동안 실적이 약 두 배가 되었음.(양, 질, 의존성, 협력성) 양과 질은 것은 종업원들이 개개인이 최고다 되고자 노력하는데 동기부여를 하였고, 의존성과 협력성은 서로 함께 해나가는데 있어서 영향을 주었다. 업무 수행에 따른 임금지급과 보너스 때문에 생산, 유통, 판매, 고객관련 등 모든 업무에 종사하는 종업원들은 기업가처럼 활동하였음. 보너스는 업무성과를 높이는데 큰 효과를 거두었음. Lincoln의 종업원들은 높은 생산성과 퀄리티의 갭이 없었고, 지각과 조퇴비율도 매우 적었음. 심지어 폭풍이 와서 Cleveland의 모든 곳이 문을 닫아도 Lincoln의 공장은 돌아감. 이는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과 더불어 최고의 시스템이 존재했기 때문임. 그 시스템은 많은 관리 감독을 요구하지 않음. 전형적으로 미국에 종업원수 25명 당 1명의 관리 감독이 있고 조립파트는 10명당 1명의 관리감독이 있는데, Lincoln은 이보다 훨씬 더 적음. 따라서 보너스를 지급하는 것이 가능함. 하지만 보너스를 줄이면 생산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관리 감독을 늘려야 함. 따라서 우리는 보너스를 줄일 생각이 없음.

1992년 8월 둘째 주에 우리는 특혜를 받았음. Harry Carlson의 부사장을 Cleveland의 두 메이저급 은행과 함께 만났음. 그들은 편의를 위해서 조금 더 큰 은행을 찾을 찾겠다고 했음. 또한 새로운 한도액을 협상하자고 함. 따라서 우리는 하나의 걱정을 덜고 보너스를 지급할 수 있었음.

d. Still Bleeding in Europe(여전한 유럽에서의 쓰라림)

비슷한 시기에 Ellis Smolik의 CFO와 함께 유럽으로 출장을 감. 둘 다 해외경험이 없었음. 다음 달부터 한 달에 두 번씩 약 7~10일간 유럽에 머물게 될 것임. 가장 먼저 접촉한 사람은 경영 디렉터와 판매 매니저였음. 나는 그들에게 소매판매 경쟁력 제고방안을 위한 계획을 작성하라고 함. 그 계획은 1993년 말까지 비밀리에 진행되었고 목표는 1993년에 수익을 내는 것이었음. 다른 해외의 디렉터들과 함께 경영 디렉터들은 이른 8월까지 그들의 계획을 실행할 것에 대해 말함.

8월에 우리는 해외 경험을 가지고 있는 Good year의 이전 CFO였던 Orin Schaeffer을 컨설턴트로 영입하였고, J.P. Morgan과 함께 일하게 했음. 컨소시움을 위해 10개의 은행을 모았고 그들 중 네셔널 뱅크와 씨티 뱅크는 다른 은행들보다 더 앞에서 우리를 지원해줄 것을 말함.

그 달이 끝난 후 우리는 삼사분기에 920만 달러의 손해를 봤음. 그러나 해외에서 진행 중인 계획은 지속시켰음. 우리는 10개의 은행을 통해 대출한도를 2억3천만 달러로 늘릴 은행을 찾고자 했고, 결국 그렇게 되었음.

12월에 우리는 5210만 달러를 미국의 종업원들에게 보너스로 지급했음. 또한 과거와 마찬가지로 주주들의 이익배당금을 줄 것을 승인했음. 1월에 회사의 총 분기 실적이 통합적으로 1980만달러의 손해로 나타났음. 따라서 해외 조직을 강력하게 유지하기 위해서 불필요한 기계와 의문이 생기는 투자들을 취소하기로 함. 여러 가지 위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향후 전망을 희망적으로 낙관했음. 우리는 1년간 총 4580만달러의 손해를 기록함. 그 동안 Rolf는 사임했고, 1993년에 판매능력과 생산능력이 뛰어난 Keith Cowan을 영입하여 제조파트 운영을 소생시키도록 함. 3월에 우리는 10개의 은행과 대출한도에 대해 계약을 맺었고, 우리는 위기를 넘었다고 생각했음. 그러다 유럽의 디렉터들은 그 이후에 큰 문제가 닥칠 것이라 확신함. 또한 유럽의 불황을 생각하지 않고 계획을 세웠음. 그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고, 1992년 1분기는 다시 비관적이 되었음. 운영손실이 1140달러에 이르렀음.

1993년 봄에 나는 결국 우리의 문제가 무엇인지 알 기회를 갖았다. 유럽의 운영기관들은 실제 활동이 아닌 미래 예측에 의한 예산수립을 함. 따라서 비즈니스 활동에 대한 예산이 부풀려질 수밖에 없음.

5월 중반에 나는 4월의 결과를 받았음. 유럽의 경우에 해외 영업수행에만 830만달러의 손해가 왔고 전체적으로 960만 달러의 손실을 봄. 우리는 새로 맺은 협정을 위반할 것 같다는 위기를 맞게 됨. 다시 나는 고용자들과 임원들에게 긍정적인 외관을 남겨주기 위해서 힘들 다해야만 했음.

e. A Plan to revive the Patient

나에게 두 가지 선택이 있었음. 하나는 일시해고를 시키거나 임금을 삭감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목숨을 걸고 수익을 내는 것이었음. 첫 번째 안이 더 눈에 들어왔으나 다운사이징을 하게 되면 의욕, 생산성, 신뢰가 떨어지는 결과가 올 것이 당연했음. 여태껏 사람과 프로그램에 투자해서 회사에 책임감을 가지고 일하는 종업원들을 해고할 순 없음. 따라서 생산성 향상으로 방향을 바꿈. 따라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Point 21이라는 계획을 세우고 생산성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향상시키고자 함. 원래 320만 달러였던 기존 예산을 넘어 미국의 좋업원들에게 520만 달러의 선 지급 보너스를 제공하고, 유럽으로 건너가 최소한의 출혈로 보너스를 제공했음. 이사회는 감격적으로 그 계획과 내 의견을 지원해줌.

6월에 나는 우리의 미국 종업원들에게 “우리는 충분히 남들이 주로하는 다운사이징을 할 수 있지만 우리가 함께 힘을 합쳐 간다면 해외의 손실을 국내에서 막을 수 있을 것, 우리는 기존의 은행과의 한도액을 유지할 것이고, 올 12월에 돈을 대출해서라도 보너스를 줄 것임. 우리의 사람들을 해고하거나 다치게 하지 않고 탑 라인을 극대화 시킬 것임.” 이라고 말했음.

우리의 임원들은 회사의 상황에 대해 설명했고, 최전선의 종업원들은 수시로 소규모의 미팅을 할 것이라 말함. 우리는 종업원의 고문 이사에게 우리의 계획을 설명했고, 매 순간 약간의 시간이라도 절약하자고 말함. 또한 비디오를 제작해서 종업원들에게 나눠주며 집에가서 가족과 함께 볼 것을 권장함. 비디오에는 과거의 해외진출에 대한 반성과 함께 회사를 위해 보증을 서줄 것을 간곡히 부탁함. 만약 보증을 서지 못해 은행과의 계약이 깨지면 12월의 보너스를 줄 수 없다는 사실도 알림.

이것과 동시에 31개 지역의 판매 매니저를 고용하고 상황을 설명함 “만약 판매가 늘어나면 더 많은 생산을 할 수 있으니 판매촉진에 대한 아이디어를 마련하라.” 또한 우리는 어떠한 노력을 통해 자금이 확보되어야 보너스를 지급할 수 잇는 지에 대한 내용이 담긴 금융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함.

모든 총력을 다한 커뮤니케이션 노력은 매우 중요했음. 왜냐하면 우리 모두의 공동 책임이 있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함. 루머는 공장의 작업환경에 걱정과 두려움을 주었음. 따라서 우리는 사람들에게 회사의 문제점을 알리고 우리와 함께 공동 목표를 가지고 싸울 것을 당부함. 계획은 미국 조직의 하루의 판매를 180만 달러에서 210만 달러로 확대하도록 요청했음. 몇몇 사원은 이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했음. 그러나 나는 12월 안에 70~80%인 사용가능량을 100%이상으로 늘려 생산량을 향상시킬 것이라 함.

우리는 즉시 공장으로 이동하여 공장 매니저들에게 모든 병목현상이 나타나는 곳을 제거하라고 말했고, 그들은 이를 하루빨리 찾으려 노력함. 대부분의 매니저들은 사람이 적은 것이 가장 큰 병목현상이라 함. 그래서 인원충원을 하기 시작함.

그러나 새로운 사람이 제품생산을 하기 위해서는 훈련이 필요함. 적어도 2~3년은 배워야 장비를 다루는 법을 알 수 있음. 따라서 누구나 다 쉬는 휴일과 공휴일에도 판매 목표량을 생산하기 위해 노력함. 또한 모든 베테랑들을 병목현상이 집중되는 곳으로 보내서 일을 하게 했고, 휴일과 휴가 까지도 미루기를 권함. 따라서 약 450명의 사람이 약 614주의 휴가기간을 포기하고 일함. 고용조정 이사는 여러 나를 포함한 여러 임원들과 가까이서 일했고, 특히 베테랑들에게 눈에 보이지 않는 병목현상, 태도 등의 문제들을 시간낭비를 줄이는 목적으로 나에게 다이렉트로 연락하게 함.

e. Transatlantic Culture Shock

1993년 6월에 와이프와 여러 임원들과 함께 유럽의 총 본사를 세우기 위해 영국으로 갔음. 그 동안 과거부터 나와 함께 미국에서 함께 일한 Fred가 북미지역을 맡았음. 나는 dfjq에 도착하자마자 Lincoln의 제품을 다루고 있는 모든 메이저 판매망들과 함께 그룹미팅을 잡았음. 미팅에서 각 지역과 고객들의 성향에 대해 언급했고, 새로운 사업을 받아서 할 것임을 얘기했음. 이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음.

여러 달 동안 나는 판매처와 매니저들을 봤고, 다수의 공장을 방문함. 나는 예전의 비즈니스 모델을 재조정 하지 않고 바꾸고자 함. 모든 공장들은 능력의 50%정도만 가동되고 있었음. 내가 그들의 시장점유율을 향상시키는 계획을 작성하라고 했을 때 침체의 쓰라림이 몸으로 전해져 왔음. 그들은 나에게 말했음. 시장 점유율을 높이는 방법은 다른 회사를 사는 것임. 그렇지 않으면 결코 다른 경쟁자들로부터 점유율을 가져올 수 없고 보복만 당하게 될 것임. 한편 Messer공장에 갔을 때는 정말 놀랐음. 사람들이 일을 하지 않고 놀고 있거나 잠을 자고 있음. 나는 이사들에게 “이곳에서 비즈니스 활동을 하는 것을 그만 두자고, 이곳에 있으면 우리기업이 망할 것”이라고 말했음. Lincoln의 인센티브 시스템을 도저히 설치할 수 없을 것이라 여겨짐. 이는 문화의 차이에서 오는 것임. 예를 들어 독일의 경우 기술력이 높기 때문에 한주에 약 35시간 이상 일을 하지 않음. 하지만 Lincoln은 약 58시간 이상 일을 함.

다행히도 1993년 우리의 계획을 실행시킬 방법이 하나 생김. 그것은 Trade Show임. 위기의 상황에서 이 쇼를 통해 판매기회를 획득 해야만 했음. 우리는 비행기 세대 분의 제품을 미국으로부터 가져왔으며, 테스트를 통해 기대보다 많은 1700개 이상을 독일에서 판매함. 이를 통해 미국산 제품의 우수함을 알렸고, 세계 어느 곳에서도 인정받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생김. 우리는 외국에 있는 몇 개의 공장을 폐쇄할 수 있었으며, 여전히 외국시장에서 경쟁을 하고 있음.

f. Change at the Top

CEO가 된 후 8개월 동안 혹독한 고통과 위기의 복잡함을 느꼈고, 이를 넘어 Lincoln이 무너지지 않고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다는 확신을 이끌 수 있었음. 회사는 진실한 메니지먼트 팀이 필요함. 우리는 경영자와 이사들 모두 해외진출에 대한 전문 기술이 필요함. 그리고 우리는 CEO로부터 독립되어 왕성하게 도전을 할 수 있는 이사회가 필요함. 나는 지난 시간의 고난을 통해서 해외진출에 대한 전문기술이 부족함을 느꼈다. 무엇인가 전복된 느낌과 누구로부터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음. 1993년 5월 주주총회에서 우리는 해외진출에 대한 전문기술과 재무적 능력을 갖춘 세 명의 외부 인사를 영입했음. 또한 Goodyear에서 Jay Elhot을 새로운 CFO로 영입함. 이 네 사람은 취약했던 경영 순위들을 높게 끌어올림.

1993년 가을, 유럽의 용접 산업은 과다생산으로 인해 진흙에 빠져 질퍽거린 것 같았음. 우리는 여러 국가의 운영조직 규모를 줄이고, 브라질과 일본, 베네수엘라의 비즈니스 활동을 중단했음. 이번 년 우리의 조직 재배치에 7010만달러가 사용 됨.

g. Turning It Around

다행히도 미국에 좋은 소식이 많음. 1993년 말을 넘어가면서부터 미국에서의 판매량이 210만 달러가 아닌 310만 달러가 됨. 따라서 생산량도 함께 늘려감. 우리의 종업원들은 이러한 성과를 자랑스럽게 여김. 여러 가지 큼직한 일이 더 있음. 우리의 엔지니어들은 새로운 제품을 출시하여 월마트와 홈 디포에 납품을 하고 있고, 장기간 거래하고 있는 유통업체에는 특별한 판매촉진방법을 제공하여 높은 성공을 하게끔 도와줌.

또한 Lincoln의 인센티브 시스템은 대중적인 관심을 받고 있음. 따라서 이를 60분짜리 다큐멘터리로 만들어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음. 이러한 Lincoln의 제품과 기업의 이미지에 대한 인식은 Lincoln의 평판을 향상시키고 있음. 또한 다른 기업이 지속적으로 규모를 줄여나가고 있는 반면 우리는 우리의 생산성을 향상시키고 있음. 이와 더불어 시장점유율도 상승하고 있으며, 우리가 원하는 가격을 받고 제품을 판매하고 있음.

Lincoln은 공장의 효율성 제고와 수익의 상승으로 인하여 대출액 한도를 초과하지 않고 대출 한도를 그대로 유지할 수 있었음. 미국 회사의 괄목할만한 성과는 11월에 종업원들이 은행을 상대로 새로운 대출한도를 요구한 것임. 1993년 12월 우리는 5530만달러를 빌린 돈과 함께 보너스로 지급했고 재조정 비용을 포함하여 3810만달러의 손해를 봤음. 1994년 1분기에 유럽과 해외 운영이 어려운 상태였음. 따라서 우리는 미국의 제품을 수출해 판매하는 새로운 전략을 세웠고, 1994년에는 새로운 대차대조표를 재구성 하기 시작했음. 1994년의 목표는 운영조직을 통합하는 것과 시장 점유율과 수익을 상승시키는 것이었음. 이와 더불어 새로운 제품을 출시하여 우리의 고객을 확대하였고. 보너스를 지급한 후 약 4800만 달러의 수익을 낼 수 있었음. 따라서 이 위기의 전쟁은 끝났음.

h. Harsh Lessons Learned

위기의 근원은 우리의 시스템과 능력에 대한 자만감 때문이었음. 우리는 수십년간 지속되온 인센티브 시스템과 특별한 기업문화(헌신적이고 기술적인 종업원들)를 자랑해왔음. 우리는 우리의 이러한 특징이 해외에도 빠르게 전파될 것이라 믿음. 우리는 특별한 트렌드에 맞추어 변화하는 변덕쟁이들을 조롱했으며, 팀워크와 열린 커뮤니케이션을 Lincoln이 오랜 기간 동안 비즈니스활동을 지속할 수 있었던 이유라고 생각함.

전 세계를 대상으로 경쟁을 하는 것은 우리가 예상했던 것 보다 많은 시간과 돈, 경영자원을 필요로 했음. 우리는 앞으로 더 신중하게 해외의 경험을 습득할 것임. 우리는 조인트 벤처를 통하여 파트너십을 맞고 새로운 공장을 세울 것임.(케나다 회사의 터키진출 예) 또한 멕시코에서의 성공(문화가 맞지 않지만 점진적으로 확대)을 바탕으로 우리의 특수한 조직문화와 인센티브 시스템을 천천히 이식해 나갈 예정임.

1994년 이후로 우리의 시장 점유율을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으며, 대차대조표도 강해지고 있음. 또한 부채 비율이 63%에서 12%로 줄어듬.

Lincoln은 지금 해외 진출 전문지식을 갖춘 이사들과 경영팀을 가지고 있으며 과거의 힘들었던 교훈을 참 감사하고 있음.

C. 논문의 한계 및 공헌

a. 한계점

1) 한 기업을 소재로 하였기 때문에 일반성이 없음.

2) 기업 내부자의 시선임을 고려할 때 객관적이지 못할 수 있음.

3) 큰 Risk를 알고도 감정적인 판단을 하여 성공을 했기 때문에 항상 옳지 않을 수 있음.

4) 조인트 벤처 역시 필자가 지적하는 현재의 트렌드를 따르는 것일 수 있음.

b. 공헌

1) 특정 기업의 사례를 통해 간접적으로 해외진출에 필요한 요소를 알 수 있음.

2) CEO의 해외사업 경험의 중요성을 알 수 있음.

3) 과거의 교훈과 현재의 트랜드를 반영하여 새로운 대안을 제시함.

4) 조종업원의 충성도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려줌.

posted by Hi.K
prev 1 2 3 4 next